2015년 4월 9일 목요일
아타리 쇼크의 CEO 레이 키사르 인터뷰
[비디오 게임 산업의 역사를 기술한 책 Replay의 저자 트리스탄 도노반은 책을 위해 중요한 인터뷰들을 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의 내용은 일부만 발췌되어 책에 실렸고, 가마수트라는 트리스탄 도노반이 아타리 2600 시절의 경영자였던 레이 키사르와 했던 인터뷰 전문을 게재하게 되었습니다.]
레이 키사르는 1970년대 후반 몸담고 있던 섬유 산업계에서 마지못해 아타리의 경영을 맡아 아타리를 정점에 올려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난잡한 산업의 선구자였던 게임 회사를 아타리 2600을 수백만대 팔아치우며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의 반열에 올려두었지만, 그의 유산은 아타리의 장엄한 몰락과 대참사를 불러온 E.T.의 악명, 그리고 아타리의 게임 기획자들을 "신경질쟁이 프리마돈나"라고 부른 일화에 가려져 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키사르는 게임 기획자의 적이라는 명성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밝히고, 그 당시 아타리가 왜 그를 필요로 했는지 설명할 것입니다.
당신은 아타리전에 섬유 산업에서 일하고 있었죠, 어쩌다 아타리의 자리를 제안받게 되었고, 그 제안에 당신은 어떻게 반응했었나요?
레이 키사르: 아타리 자리는 워너 커뮤니케이션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의 추천으로 제안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이 제시하는 자리에 전혀 관심 없었어요.
관심이 없었다면 왜 그 자리를 수락하게 되었나요?
RK: 제 친구가 당시 워터의 회장이었던 매니 제라드와 저를 만나도록 끈질기게 요구했었어요. 매니 제라드와 4시간에 걸친 이야기 끝에 제가 요구한 조건들 하에서만 그 자리를 맡겠다고 말했어요. 워너는 제 조건을 모두 받아들였고, 전 딱 2주만 그곳에서 근무하기로 했었죠.
당시 비디오 게임에 대한 당신의 의견은 어땠나요? 비디오 게임을 해본 적은 있나요?
RK: 전 비디오 게임에 대해 아무런 의견도 없었고, 비디오 게임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어요.
매니는 당시 아타리에 반드시 필요했던 기업 규율 확립을 위해 당신을 고용했다고 말했어요. 당신이 합류한 때 아타리는 적절한 경영을 얼마나 필요로 하고 있었나요?
RK: 아타리에는 아무런 조직 기반이 없었습니다. 최고 재무 책임자도 없었고; 제조 담당자도 없었고, 인사 담당자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타리는 아무것도 굴러가지 않고 있었어요.
아타리에 가기로 했을 때 상태가 그렇게 나빴다는 걸 알고 있었나요?
RK: 아니요. 전혀 몰랐어요.
그렇다면 상당히 충격받았겠네요...
RK: 그렇게만 표현하면 아주 축소해서 말하는죠. 한 사례를 들면, 제가 아타리에 출근한 첫날 전 양복을 차려입고 놀란 부슈널과 만났어요. 그때 그는 티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티셔츠에는 이렇게 적혀있었죠: "씨팔 좋아(I love to fuck)". 그게 제가 아타리에 첫 출근한 날이었어요.
놀란 부슈널이 합류한지 얼마 안 된 당신에게 경영진 회의가 끝난 후 대마초를 권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요. 당시 당신의 반응은 어땠나요? 아타리에 널리 퍼져있던 마약 문화에 어떻게 대응했었나요?
RK: 맞아요, 그 이야기는 사실이에요. 전 부슈널에게 바쁘다고 말하고 일어나서 회의실을 떠났어요... 믿을 수가 없었죠. 마약 문제는 계속되는 문제였어요.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어요: 한때는 임직원이 12,000명이나 됐거든요.
마약 문제가 아타리에만 있었던 거라고 생각하나요?
RK: 아니오. 캘리포니아의 문제였어요: 모두가 대마를 피웠어요. 아타리만 가진 문제는 아니었지만, -- 제 생각에는 -- 모든 이들의 근무에 영향을 끼쳤어요. 하지만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고, 당시 다른 회사들도 다 겪고 있는 문제였죠.
1978년 1월에 아타리에 입사했을 때 아타리 2600의 성과는 어땠었나요? 제가 알기론 당시에는 성공과는 매우 거리가 멀었던 걸로 들었습니다.
RK: 2600은 팔리긴 했지만 그렇게 많이 팔리진 않았어요. 문제는 아주 끔찍한 제품의 품질이었습니다. 반품율이 터무니 없이 높았어요.
기계의 품질요? 아니면 게임, 혹은 다른 건가요?
RK: 하드웨어였어요.
1978년의 크리스마스에 당신은 아타리가 2600을 성공으로 이끈 모든 것을 다 버려야 된다고 결정했어요. 크리스마시 당시 아타리가 얼마만큼이나 "죽기 살기"로 달려들어야 할 상태였나요?
RK: 우리가 내린 결정의 핵심은 상품 광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는 세일즈 담당자들이 강력하게 지지했어요. 죽기 살기의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그 결정은 워너에서도 전적으로 지지했어요.
놀란은 1978년 크리스마스전에 있었던 워너의 경영진 회의에서 아타리가 아타리 2600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당신은 왜 그가 틀렸다고 생각했나요?
RK: 전 상품의 가능성을 굳건히 믿었고, 당시에 있던 문제들을 수정하는데에 집중했어요.
놀란은 그 회의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타리를 떠났어요. 그의 퇴직은 양측 모두 동의한 것으로 보이는데 왜 그가 아타리를 떠나야 했을까요?
RK: 놀란이 있었다면 전 아무것도 이룩하지 못 했을 거예요. 아타리는 두 명의 사장을 가질 수는 없었어요. 두 사람이 회사를 경영할 순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한 사람이 최종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죠. 놀란이 무언가를 말하고 제가 또 다른 이야기를 하는 상황에서, 당신이 사원이라면 어떻게 할 건가요? 아타리는 놀란을 믿던지 저를 믿던지 선택을 해야 했어요. 놀란과 저 둘 중 하나는 떠나야 했어요.
당신은 왜 계속 아타리에 남았죠? 처음엔 몇 주만 일하려 온 거 아니었나요?
RK: 맞아요. 전 매우 주저하며 아타리에 갔어요. 전 뉴욕에 살고 있었고, 뉴욕을 사랑했어요; 캘리포니아에서 사는 데는 흥미가 없었어요.
놀란이 떠나서 안심이 되었나요?
RK: 그랬어요.
1979년의 크리스마스부터 1982년의 여름까지 아타리는 엄청난 성장률을 보였어요. 당시에 미국 역사상 가장 빨리 성장하는 기업을 경영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나요?
RK: 아주 어려웠어요. 그때 전 아타리를 성공시키기 위해 제 인생을 완전히 소진해버렸어요. 우리 모두 아주아주 장시간 근무했어요.
그 시기에 아타리의 게임 기획자들은(역주:개발자와 기획자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 그들의 공로를 인정받지 못해 불만을 품고 있었는데, 당신은 포준 매거진에서 불만을 품은 직원들을 가리켜 "신경질쟁이 프리마돈나"라고 불렀어요.
또한 당신이 게임 기획자들을 가리켜 그들은 당신이 전에 일하던 회사의 수건 기획자들과 똑같이 대우받아야 한다고 말했다는 소문도 있어요. 당시에 어떤 생각으로 그런 발언을 하였나요? 그리고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렇게 말한 게 실수였다고 생각하나요?
RK: 전 게임 기획자들을 수건 기획자들과 비교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획자들을 가리켜 "신경질쟁이 프리마돈나"라고 말한 건 실수였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말은 비공식적인 발언이었는데 유감스럽게 공개되어 버렸죠.
하지만 전 기획자들을 깊이 존중하였습니다. 그 부분은 확실해요. 저에게 씌워진 그러한 이미지는 제가 개발자 출신이 아니고, 뉴욕에서 왔다는 이유로 저를 미워하던 개발자들에 의해 확대 생산된 이미지입니다.
제가 미국인이 아니라서 물어보는 건데, 동부와 서부 사람들의 방식이 많이 다른가요?
RL: 음, 맞아요. 동부는 모든 면에서 좀 더 진지해요. 동부 사람들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일하고 직장을 놀이터로 보지 않아요,. 당시의 캘리포니아는 격식이 거의 없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뭐 그건 괜찮아요; 저한테 그게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게임을 하며 놀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는 책임지는 성인 역활을 해야 했죠.
그럼 당신은 왜 그들이 신경질쟁이 프리마돈나라고 생각했나요?
RK: 프로그래머들의 천성이 그런걸요. 그들은 예술가 같아요. 제가 기억하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아주 우수한 프로그래머가 어느 날 저를 찾아왔어요. 그가 엄청나게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전 그 프로그래머가 5시간 동안 시를 낭독하는 걸 들어주었어요. 그건 좀... 알다시피 별난 일이었죠. 하지만 그는 뛰어난 프로그래머였고, 그 외에 다른 건 개의치 않았어요. 그 프로그래머는 밤 12시에 출근해서 아침 7시까지 알하곤 했어요. 그가 결과물을 내놓기만 한다면 전 사소한 건 따지고 들지 않았어요.
자기가 쓴 시를 낭독했나요?
RK:네 직접 쓴 시요. 그는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가 당신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가지고 있었어요. 당신 정말 신경을 쓰고 있군요." 전 사람들이 모르는 이와 비슷한 일들을 많이 했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프로그래머들을 아끼고, 사기를 복돋아 주고, 애정을 나누며 격려해주고 영감을 주는 그런 일들을 다 했어요. 왜냐하면 게임이 없이는 사업도 없는 거니까요. 그래서 그들은 많은 존중을 받았고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뒀어요. 프로그래머들이 결과물을 내놓기만 한다면 전 괜찮았어요.
알란 알콘도 당신이 그가 진행하던 홀로그램 콘솔 프로젝트인 '코스모스'를 중단시키자 회사를 떠났는데요. 왜 그 프로젝트를 중단시켰나요?
RK: 그 프로그램은 비용 부담이 크고 아무런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었어요. 우리의 중심, 핵심 사업에서 너무 벗어난 프로젝트라 생각했어요.
알콘 같은 사람을 잃은 게 큰 손실이었나요? 그는 최초의 아타리 개발팀 중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사람이었잖아요.
RK: 알콘은 아주 좋은 사람이었어요. 전 그와 잘 어울리고 있었지만, 알콘은 퇴사하길 원하고 있었어요. 당신도 알다시피, 제가 만들고 있던 회사는 다른 회사였으니까요.
그는 놀기 바랐지만 저에겐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잔뜩 산적해 있었으니까요.[웃음] 어쨌든 그는 좋은 사람이었고, 전 알콘을 좋아했어요.
아타리의 가정용 컴퓨터 부서는 신데렐라처럼 취급받았었는데요. 가정용 컴퓨터를 놓친 이유가 아타리가 너무 빨리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당신이 아타리 2600의 판매량을 감소시킬 수 있는 모든 사업을 기피했기 때문인가요?
RK: 컴퓨터 부서는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었어요. 우리는 비디오게임에 집중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어요.
2600 또한 마텔의 처음에는 인텔리비젼과 그리고 후에는 콜리코비젼의 경쟁에 직면해 있었는데요. 이 경쟁자들이 얼마나 큰 위협이었나요?
RK: 마텔은 막강한 기업이였지만, 진지하게 경쟁에 임하진 않았어요.
2600이 해외에서는 어땠었나요? 특히 일본과 유럽에서요.
RK: 2600은 유럽에서는 아주 잘 나갔어요. 일본에서는 그렇지 않았는데; 당신도 알다시피 일본은 자체적인 비디오게임 역사가 있었으니까요. 유럽에서 잘 팔리긴 했지만 미국에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죠.
2600의 후속작인 아타리 5200은 시장에서 성과가 좋지 않았어요. 당시에 어떤 실수를 했었나요?
RK: 5200의 기술적 개선이 시장의 기대에 못 미쳤어요. 그게 근본적인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그럼 업계를 강타한 사건으로 주제를 바꿔보죠. 아타리의 E.T.는 당시 미국 게임 산업 붕괴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워너의 회장이었던 스티브 로스가 E.T.를 급하게 개발해서 대량 생산하도록 명령했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RK: 네 로스가 저에게 E.T.를 만들라고 명령했어요. 그는 저를 불러서는 "내가 스필버그에게 $2,500만 달러를 지불하고 이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스티브, 우리는 그 누구라도 돈을 준다고 약속할 수 없어요. 왜 $2,500만 달러를 계약했죠? 게다가 전 E.T.는 액션 스토리가 아니기 때문에 대형 히트작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는 제 결정을 기각했어요. 또 다른 문제는 우리는 게임 반도체칩을 조달할 시간도 충분치 않았어요. 그때가 8월이었는데, 스티브는 크리스마스에 게임을 발매하길 원했어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6개월 정도의 제품 생산 준비기간을 잡고 있었어요.
E.T. 게임 카트리지 재고와 반품 물량이 너무나 많아서 결국 뉴멕시코 매립지에 파묻혔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실제 어땠는지 알고 있나요?
RK: 음, 저희는 대략 5백만장을 생산했어요. 그리고 대부분이 반품됐어요. 전 스티브에게 E.T.가 많이 팔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이 만드는데 바보 같은 짓이라고 이야기했어요. 하지만 스티브는 그 이야기에 매우 짜증 내며 이렇게 말했죠. "아니, 아니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그래서 우리는 거의 5백만장을 생산했고, 대부분이 소매상으로부터 반품됐어요. 전 뉴멕시코 매립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어요. [편집자주: 키사르는 E.T를 비롯한 재고/손실/반품 게임 카트리지를 매립지에 파묻을 때는 이미 아타리를 떠나있었다.]
아타리의 1982년 4분기 성과는 애널리스트의 성장 예상치보다 낮아서 아타리의 주가 폭락으로 이어졌고, 이는 미국 게임 산업 붕괴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당시 실망스러운 성과의 원인이었나요?
RK: 4분기에는 당시 들어오고 있던 E.T. 반품비용을 반영했어요. 그게 문제였죠.
당신은 아타리를 1983년 7월에 떠났는데 자발적 사직이었나요 아니면 해고 당한 거였나요?
RK: 해고당했어요. 물론 언론에서는 사임했다고 발표했지만 해고당한 거였어요. 매니가 저를 뉴욕으로 소환했고, 스티브가 아닌 그가 저를 해고했어요. 왜냐하면 스티브는 누군가와 대면해서 해고한다고 말을 못할 사람이었으니까요.
그가 밝힌 해고 사유는 무엇이었나요?
RL: 왜냐하면 그들이 E.T. 사태의 책임을 저에게 돌리려 했기 때문이에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고, 스티브는 책임을 질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는 워너의 회장이니까요. 전 워너의 자회사들 중 하나의 사장에 불과했죠. 그러니 아시다시피, 누군가 책임을 져야한다면 그건 바로 제가 되어야 했어요.
그건 그렇고, 해고당하기 전에 전 이미 스티브가 저를 불쾌하게 여기는 것을 느끼고 사임하겠다고 말했었어요. "스티브, 만약 제가 그만두길 바란다면 전 기꺼이 사임하겠어요. 그동안 좋은 경험이었어요. 우리가 합의점을 찾지 못 해서 유감이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전 아무런 후회가 없어요." 하지만 알다시피 그는 제 면상에서 직접 "그래 사임했으면 좋겠네."라고 말하지 못 했어요.
해고당한 후에 전 일주일 정도 런던으로 갔었어요. 돌아오니 매니가 전화해서 말하더군요. "스티브가 3달간 다시 돌아와 일하길 원하네. 자네 후임자를 아직 못 찾았어." 그래서 제가 말했죠. "매니, 농담하는 거겠죠. 당신이 날 해고했으면서도 후임자가 없다고요? 그런데도 제가 돌아가서 세달간 일하길 원한다고요? 제정신이 아니군요. 절대 안해요."
아타리를 떠나 안심이 되었나요?
RK: 어떤 면에서는 안도감을 느꼈어요. 하지만 아타리에서 일한 건 대단한 경험이었고 전 멋진 시간을 보냈었어요. 제 인생 최고의 시기 중 하나였고, 그렇기 때문에 전 아무런 후회가 없어요. 아타리에 대해서는 좋은 기억만 가지고 있어요.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일했었고, 정말 많은 걸 이루었어요.
아타리의 역사에 대한 많은 이야기에서 당신은 갑자기 나타난 양복쟁이로, 아타리의 문화를 바꿔서 결국 아타리를 망쳐버린 주범으로 그려지고 있어요. 그런 인식이 신경 쓰이지 않나요?
RK: 물론 신경 쓰이죠. 왜냐하면 사실이 아니니까! E.T.는 파멸의 징조였어요. 저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반대하던 것요. 프로그래머들은 제가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2-3달 사이에는 게임을 만들 수 없어요! 미쳤군요." 그래서 E.T.를 급하게 만들었고 재앙이 되었죠.
제가 한 일은 아타리를 진짜 사업으로 만든 거였어요. 제가 합류했을 때, 그곳은 게임을 좋아하는 프로그래머들이 놀고 있는 일종의 놀이터였어요. 제대로 된 사업이라 할 수 없었는데 왜냐하면 상품 품질, 반품율 관리, 광고, 마케팅 이런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편한 대로 말하지만 그렇게까지 많이 신경 쓰이진 않아요. 왜냐하면 그 이야기들은 사실이 아니고,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2초만 생각해보더라도 제가 했던 일들이 어떤 건지 깨달을 테니까요.
전 부슈널을 좋아했어요, 전 그에게 개인적으로는 아무 반감이 없어요. 아주 똑똑하고 능력 있고 매력적인 사람이었어요, 결과적으로 그 모든 건 제가 아니라 부슈널이 시작한 거잖아요; 제가 합류했을 때 아타리는 난장판이었고 손실을 보고 있었어요. 당시 아타리는 연간 매출이 약 $7,500만 달러였고, $1,500만 달러 정도 적자를 보고 있었어요. 3년 후에 우리는 매출액 $30억 달러에 당시 세상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회사였어요. 그러니 나쁘진 않았던 거죠.
대단하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말 못할 텐데...
RK: 못 하죠. [웃음] 하지만 전 놀란에게 많은 공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가 창업자이고 전 그 사실을 존경하니까요. 전 놀란에게 아주 좋은 일을 했던 거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는 결국 스스로를 파멸시켰을 테니까요. 워너는 결코 [당시의]놀란을 용납하지 않았을 거에요.
좋은 인터뷰글 잘 읽고 갑니다. 다큐멘터리도 찾아봐야 겠어요.
답글삭제글 잘 읽었습니다 재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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