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5일 월요일

재난을 멈추기위해 주 40시간 근무를 준수해야 하는 이유



150년간의 연구 결과는 노동 시간의 감축이 실제로는 생산성과 이윤을 높이는것을 증명하였다 -- 그리고 초과근무는 생산성과 이윤을 모두 손상시키다. 그런데 왜 우리는 아직도 이러고 있을까?

(Credit: iStockphoto/Mordollf)

만약에 여러분이 현재 직장을 다니고 있을 정도로 운이 좋다면, 분명 여러분은 그 직장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분투하고 있을 것입니다. 상사가 주간 50시간을 일하라고 지시한다면, 당신은 55시간을 일할 것입니다. 상사가 60시간을 지시한다면, 당신은 금요일밤과 토요일을 포기하고 65시간을 일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짓을 수년 혹은 몇 달에 걸쳐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분 가족의 삶을 희생하고, 정기적인 운동과 제대로 된 식사마저 포기하고, 엄청난 스트레스에 제정신까지 희생하고 말입니다. 당신은 번아웃 되고,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여기저기 아프지만 당신의 배우자와 아이와 개들로부터는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별 수 없이 계속 이 상태를 이어갑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미친 듯이 근무 시간을 연장하는 게 "열정적"이고 "생산적"이며 "팀 플레이어"가 되는 자격증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다음 정리해고의 칼날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 직장의 모습입니다.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기업 경영자들 사이에서 주당 40시간 이상 일을 시키는 것은 멍청하고, 위험하며 너무나 비싼 낭비라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지만, ─그리고 관리자의 무능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징조─ 너무나 오래되어서 미국의 근로자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주 40시간은 이제 이단이 되었습니다(앞으로 제가 하는 이야기로 한번 상사를 설득해 보세요). 하지만 주 40시간을 넘기는 추가 근로시간은 여러분을 장기적으로나 단기적으로나 덜 효율적이고, 덜 생산적으로 만듭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기업의 생산성과 이윤을 증대시키는 가장 간편하고 빠른 방법은 --오늘, 지금 당장 시작하세요.-- 모든 사람을 주 55시간 근무의 트레드밀에서 끄집어내어 다시 40시간 근무로 돌려놓는 것이다.

이 글은 노동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현대 경영진들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이 사안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주 40시간 근무제를 확립하게 되었던 걸까요? 그리고 왜 잃어버렸을까요? 다시 주 40시간 근무제로 되돌려야 하는 설득력 있는 사업상의 이유가 있을까요?


40 시간 근무제의 정착

주 40시간 근무제에 대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비록 처음에는 노조가 추진하였지만 결국에는 경영자들도 함께 했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경영진 스스로 연구한 데이터가 주 40시간 근무가 사업에 득이 된다는 냉철하고 확고한 결론을 내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초반 영국과 미국의 노조들은 모두 근무시간 감축을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19세기 후반이 되자, 점점 더 많은 산업계의 기본 규칙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는데: 점점 더 많은 --수많은 국가의 무수한 사업 영역에서-- 사업가들이 노조에 굴복하여 근무시간을 단축하면, 그들의 기업이 획기적으로 더 생산적이고, 더 큰 이윤을 창출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일 적게 하기 조직의 톰 워커는 그의 번창 서약서에서 이 현상을 아래와 같이 기술하였습니다.
근무시간의 증가나 감소는 산출량을 직접적으로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다시 배워야 하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영국의회는 1848년 10시간 근무 법안을 통과시켰고, 근로자 1인당, 일간 산출량이 증가하였습니다. 1890년도에는 일부 고용주들이 실험적으로 일간 8시간 근무를 광범위하게 적용한 결과, 총 산출량이 증가한다는 결론을 반복적으로 확인하였습니다. 20세기의 첫 10년간 "과학적 관리법"의 창시자인 프레드릭 W 테일러는 근로시간의 감소가 근로자 1인당 산출량을 주목할 만큼 증가시킨다는 규칙을 발견하였습니다.
1914년 다수의 내부 연구 결과를 확인한 헨리 포드는 대담하게 근로자의 임금을 두 배로 올리고 교대시간을 9시간에서 8시간으로 줄이는 급진적인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이에 국가 제조업 총협회는 헨리 포드를 매우 격렬하게 비난했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 포드의 사업이 번창하는 걸 본 수많은 경쟁자들도 결국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1937년 주 40시간 근무는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국가 정책으로 제정되었습니다. 그 시점에서 50여년간의 산업 연구는 건강하고 우수하며, 생산적이고 안전한, 그리고 효율적인 근로자를 장기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는 주간 40시간, 일간 8시간 이상 일시켜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의심할 여지없이 증명하였습니다.

소프트웨이 엔지니어인 에반 로빈슨은 프로그래머의 생산성에 오랜 기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저와 성이 같은 건 우연이 아닙니다. -사라 로빈슨) 그는 오랜 경험을 토대로 이를 2005년 국제 게임 개발자 협회에서 백서로 발행하였습니다. 이 백서에는 기업체와 대학, 그리고 산업 관련 기관에서 수행한 풍부한 연구결과가 인용되고 있습니다. "30년대, 40년대 그리고 50년대에 수백 번에 걸쳐 수행된 연구 결과는," 로빈슨은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에도 마찬가지로 주 40시간 근무가 이득이라는 점을 미국 기업들은 아무 의심 없이 확고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1962년에 상공회의소에서는 근무시간 감소로 인한 생산성 증가 효과를 극찬하는 홍보 책자도 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이 계속해서 보여주는 사실은 산업 근로자들은 하루에 8시간의 신뢰할 수 있는 우수한 근로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평균적으로 당신이 하루 8시간 대신 10시간 일한다고 해도 조금도 더 많은 성과를 내지 못 합니다. 마찬가지로 주간 생산량은 6일간 일한다 하더라도 5일간 일한 것에 비해 조금도 늘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40시간 근무를 마친 근로자들에게 초과 근무 수당을 지급하며 주간 40시간 넘게 일하게 하는 것은 그저 이윤을 깎아먹는 멍청하고 폭력적인 행위일 뿐입니다. 퇴근 시키세요, 휴식하고 월요일에 출근하세요. 모든 사람에게 그편이 훨씬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조는 장애 보상금과 근무지 안전을 점점 더 큰 이슈로 만들었고, 이들이 주간 근로시간 단축에 더 큰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가 재앙적인 사고는(근로자를 장애인으로 만들고, 자산에 손실을 입히며, 생산 라인이 가동을 멈추고, 기업이 고소당하고, 주주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근로자들이 초과근무를 하거나 지쳐있을 경우 발생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내었습니다.

결론은 명백합니다. 대부분의 사업에서 주간 40시간 근로로 인해 발생하는 잠재적인 인적, 자본, 법적 그리고 금전적 리스크는 부담할 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이러한 의견에 누구나 동의하였고: 심지어(어쩌면 특히나!) 전시의 어려운 환경에서도, 초과근무하는 근로자는 비생산적이고 위험하여, 우수한 기업은 절대로 직원들을 한계까지 밀어붙여서는 이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초과근무의 예외사항

이 법칙에도 예외는 있습니다. 1980년대에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의해 수행된 연구에서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주당 60- 혹은 70- 시간 근무하면 단기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중요한 프로젝트 마감일을 맞추기 위해 몇 주간 추가 근무를 하는 등의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초과근무를 수행할 때 지켜야 하는 중요한 사항들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잘 알려져 있었지만, 현재는 잊혀진 것처럼 보입니다.

첫째는 팀의 근로 시간을 50% 늘린다고(40에서 60으로) 50%의 추가 산출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헨리 포드가 말했듯이). 현대의 경영자들은 대부분 추가 근무가 1:1로 추가 산출물로 나타난다고 가정하고 있지만, 이러한 가정은 거의 항상 틀립니다. 실제는 50%의 추가 근무는 일반적으로 25-30%정도 산출물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이유는, 직원들의 최상의 근로 시기는 이미 하루 8시간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일반적으로 2-6시간 사이). 9시간째가 되면, 피로가 몰려오면서 기존 생산력의 일부분만 발휘하게 됩니다. 9시간 이상 근무하면 그 후로도 근로자들의 생산성은 계속 떨어지는데, 10이나 12시간째에는 생산력이 완전히 소진되어 버립니다.

둘째는 초과 근무는 아주 짧은 전력질주에만 효과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1909년의 시드니 챔프만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일간 생산성이 두 번째 주부터 감소하기 시작하기 때문인데, 초과 근무가 한주 더 길어지면 번아웃이 자리 잡으면서 더욱 급격하게 생산성이 감소합니다. 충분한 휴식과 레크리에이션, 영양섭취,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시간이 부족하면 사람들은 점점 더 둔하고 멍청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집중할 수 없습니다. 점점 더 일보다는 이메일에 답변하거나 얼빠지게 돌아다니는데 시간을 많이 쓰게 됩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실수들을 하고; 생산성이 고갈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실수들을 고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로빈슨은 초과근무한 소프트웨어 팀이 음의 생산성을 나타내는 지경에 이르는 걸 목격했는데, 이들은 실제로 정신적으로 고갈되어 있어서 고치는 것보다 많은 오류를 내면서 이미 완성된 결과물을 매주 오히려 조금씩 잃어버리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또한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의 연구는 주당 60시간씩 겨우 8주만 근무하면 생산성의 감소가 너무나 극심해서 평균적인 팀이라면 그냥 주당 40시간으로 계속 근무했던 것과 생산성이 차이가 없다는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만약 주당 70이나 80시간씩 근무하면, 생산성 감소가 훨씬 더 빨라서 주당 겨우 3주만 계속하면 주당 40시간 3주한 것과 같은 생산성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죽음의 행군은 생산성에 장기적인 짐도 지우게 됩니다. 위기가 끝나서 주당 60시간 근무하던 팀이 평소의 40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번아웃이 해소되어 기존의 생산성을 회복하는 데에는 몇 주가 더 걸립니다. 따라서 상당 기간 동안 고용주는 완전한 40시간의 산출물보다 훨씬 적은 산출물을 받게 됩니다.


현명한 경영자들은 a) 장기적으로 생산성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초과근무가 필요한 크런치를 피하고; b) 크런치가 꼭 필요할 경우 최대한 짧은 기간으로 끝내고; c) 힘겨운 크런치 이후에는 며칠간 휴가를 줍니다. -일주일 초과 근무당 하루나 이틀 정도가 적절합니다. 생산성이 감소한 팀이 휴식을 통해 훨씬 더 빠르고 완전하게 회복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팀은 한주 정도 잘 쉬게 하고 직장으로 복귀하는 게 훨씬 더 생산적입니다. 억지로 의자에 붙잡아 두면 너무나 지쳐있어서 한 달 동안은 아무것도 쓸모 있는 일을 하지 못 합니다.

요약하자면 일일 근로시간을 늘리는 것은 생산성 증가와 1:1 상관관계를 가지지 않습니다. 초과근무는 초단기 이외에는 지속 불가능합니다. 초과근무를 많이 하면 훨씬 더 빠르게 더욱 심각한 번아웃을 초래합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회복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상사나 근로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아주 짧은 몇 주 이상의 초과근무는 장점보다 단점이 훨씬 많다는 것이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지식 근로자 시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제대 군인 사회복귀 법안(GI Bill)은 더 많은 사무직 근로자들을 배출하였습니다. 고용주들은 처음에는 육체 근로자들이 가진 한계는 지식 근로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망치를 휘두르거나 삽질을 하는 사람의 근로시간은 하루에 8시간이 한계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직 녀석들은 회색 조끼를 입고 그저 책상에 앉아 있을 뿐인데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니... 당연히 더 많이 일하라고 지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닙니다. 사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식 근로자들은 육체 근로자들에 비해 오히려 더 짧은 시간만 좋은 효율로 일할 수 있습니다 -8시간이 아닌 평균적으로 6시간. 이상하게 보이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지식 근로자라면, 자신의 매일매일의 일반적인 근로 행태를 생각해본다면 진실을 더 명확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아마도 5시간이나 6시간 정도 생산적으로 어려운 머리 쓰는 작업을 하고, 나머지 두세 시간은 회의에 참석하거나, 이메일에 답장을 쓰거나, 전화를 거는 등에 사용할 것입니다. 물론 상사가 지시하면 더 오래 일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6시간 근로한 이후에 당신이 하는 일이라고는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것뿐입니다. 당신의 뇌는 이미 퇴근하고 집에 가있지요.

지식 근로자들에 대한 또 다른 사실은 그들이 아주 약간의 수면 부족에도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입니다. 미군이 수행한 연구에서는 수면 시간이 하루 겨우 1시간만 부족한 상태로 일주일을 보내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인지능력의 저하가 혈중 알콜농도 0.1과 같은 수준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큰 인지능력의 저하가 발생한 사람들이 대부분 스스로 그렇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 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내놓은 산출물의 품질이 얼마나 낮은지 보고서야 깨닫게 됩니다. 로빈슨은 이에 대해 "만약 사람들이 그렇게 취한 채로 출근했다면, 전부 해고해 버렸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기업과, 데이터, 자산과 장비 그리고 우리와 그들 자신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근로자들을 술에 취한 상태만큼이나 위험하게 만드는 수면 결핍을 연속적으로 강요하는 문제가 기업의 작업장 환경에 끼치는 해악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이로 인해 재앙적 실수를 범할 가능성은 지식 근로자들도 육체 근로자들 만큼이나 높습니다. 로빈슨은 엑슨 발데즈호 기름 유출 사고와 챌린저 폭발 사고에 대한 후속 연구를 인용하며, 두 연구 모두에서 심각하게 과로에 시달리고, 피로에 절어있던 의사 결정자들이 이러한 재앙을 불러오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의료 근로자들이 너무나 지친 나머지 환자의 목숨에 영향을 끼치는 심각한 실수를 저지른 수많은 사례에 대한 연구가 있습니다. 또한 미군에 의해 수행된 연구에서도 포병들의 피아식별 능력을 피로가 심각하게 저하시킨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로빈슨은 이에 건조하게 "지식 근로자들이 총을 들지 않아 다행입니다"라고 첨언했습니다.)


"열정", 노동조합의 해체, 그리고 주 40시간 근무의 멸망

어떻게 해서 3대에 걸쳐 미국 기업의 경영자들이 마음에 새겨 알고 있던 이 지식들이, 그래서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던 사실을 우리가 잊게 되었을까요? 수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3가지 요인을 들 수 있습니다.

첫째로 1970년대 후반의 경제 성장 동력으로 떠오른 실리콘 밸리를 들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실리콘 밸리는 독특한 형태의 근로자들을 모아들였는데요. 새로운 연구와 혁신이라는 단 하나의 열정만을 가진 과학자와 기술자들이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단어는 1994년이 되어서야 등장하였지만, 1950년대에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의 방산업체들은 이미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사람의 성격에 부합하는 청년과 여성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외골수에, 사회생활에 익숙지 않으며, 감정적으로 무심하며 집착하는 영역에 대한 독특하고 전면적인 레이저 같은 집중력으로 축복받은(혹은 저주받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일이란 그냥 일이 아니었습니다. 일은 그들 인생의 열정이었고, 살아있는 모든 순간을 이에 쏟아부어서 많은 경우 직장 외 인간관계나 운동, 잠, 식사 그리고 때때로 자기 관리까지 내팽개친 채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기술 덕후에 대한 흔히 가지는 선입관은 이 당시에 기술에 몰두하였던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로부터 생겨났습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그 후 수십 년간 형성된 문화는 록히드 마틴사의 심리학자들이 50년대 후반에 "과학-기술 인격"이라 부르던 성격 특성을 정착시켰습니다. 기업들은 근무 시간을 넓혔고, 이에 따라 프로그래머들은 점심때쯤 출근해서 자정까지 일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스케줄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복장 규정도 느슨해졌고 개인적 기행이 찬양 받았습니다. 유명한 일화로 HP는 기술자들이 밥 먹는 것을 잊지 않도록 아침식사를 가져다주었습니다. 24시간 슈퍼마켓은 마이크로칩을 감자칩 옆에 두었는데, 차고에서 일하는 기술광들이 새벽 2시에 나와서 간식과 부품을 모두 구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80년대 초반이 되자 톰 피터스가 나타나서는 실리콘 밸리의 직업윤리를 "탁월함"이라는 미명하에 미 전역으로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HP나 애플과 같은 거대 기술기업들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열정"을 극찬하며 전통 산업의 경영진들에게 그들도 근로자들에게로부터 실리콘 밸리와 같은 열정을 끌어내고 그러한 열정에 대해 보상하면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록 피터스가 직접적으로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말하는 "열정"에 내재된 뜻은 주간 40시간 근로는 낡고 지루하다고 받아들여졌습니다. 새로운 직장에서 근로자들은 그 무엇에도 비견할 수 없는 일의 즐거움으로부터 인생의 궁극적 의미와 행복을 찾는 곳이었습니다. 이들은 직장 이외의 장소는 가고 싶어 하지도 않아야 했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크나큰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로 "열정"이라는 이상이 묘사하는 기술자들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육체적, 감정적, 그리고 심리적으로 정당한 욕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잠, 운동, 휴식, 단란한 가정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것과 같은 것들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부하직원들의 영혼을 볼 수 없는데도 지름길을 선택해서 열정을 그래프로 그리기 간편한 하나의 수치로 평가한다는 점입니다. 그 수치는 바로 "인생의 모든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낼 의향이 있는가"입니다. (고급스러운 회사 식당과 사내 헬스장, 사내 어린이집이 하이테크 기업들의 거대한 교정에서 생겨나고 있는데, 저는 이처럼 기업들이 직장을 집처럼 느끼도록 만들기 위해 그토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근로자들이 진짜 집에 가려한다면 처벌이 따를 것이라는 무언의 압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레이건 대통령 재임 초기에 150년간 주 40시간 근무의 수호자였던 노조들이 보수당의 대대적 공습에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새로운 교리의 기업가 집단이 떠오르기 시작했고, 가정적이었던 고용주와 근로자 사이의 계약관계가 갈기갈기 찢겨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업은 고용한 젊은이를 잘 양육해서 직장생활을 마치고 연금을 받는 은퇴까지 이어지도록 ─ 관리자들은 인생 전반에 걸친 근로자들과의 이 관계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유지되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 그러나 오늘날 X세대의 젊은이들은 401k 퇴직연금을 부여받고 3년이나 5년 간격으로 직업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이제 고용주들은 근로자들에게 새로운 수준의 "열정"과 헌신을 요구하면서, 오히려 근로자의 생계를 장기간에 걸쳐 챙겨주던 과거의 의무는 져버렸습니다.

탐욕스러운 새로운 기업 윤리는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쥐어짜고 태워버리자" (대학을 갖 졸업한 프로그래머를 고용해서 더 이상 견디지 못 할 때까지 주당 70시간씩 일시킨 다음, 해고해버리고 다시 새로운 프로그래머를 고용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습성을 묘사하는 문구), 그리고 "주당 90시간씩 사랑하는 이일을 하자!" (최초의 매킨토시 팀이 입었던 티셔츠에 새겨져있던 문구. 생산성 전문가들은 만약 매킨토시팀이 주당 절반만 일했더라면 실제로 맥이 1년 먼저 출시되었을 것이라 추정합니다.) 오래지 않아 이러한 기업들의 마음가짐은 기술 분야 기업들로부터 시작하여 미국의 모든 분야에 걸친 모든 기업들로 퍼지게 됩니다.

새로운 이상으로부터 "내부 혁신가들"이 등장하였습니다. -- 그들은 삶의 모든 에너지를 기업의 성공을 위해 퍼붓는 불타는 초인들로, 포기를 모르는 맹렬한 성취자들로써 토요일과 일요일을 모두 반납하고 가족계획은 무기한 연기하며, 책상에서 먹고 사무실 큐비클에서 잠을 청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주 40시간 일하는 근로자들은 패배자, 게으름뱅이로 간주되었고 미국의 기업 환경에서 사라지가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지면서 우리 모두는 주 40시간 근무라는 제한선의 의미와 중요성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15년이 흐르면서 미국의 경영자들은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알고 있던 모든 것들을 잊어버렸습니다. 이제는 30년이 흘렀고, 몇 번의 경제 불황을 겪으면서 구내식당과 어린이집, 헬스장도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그와 함께 장기 근로에 대한 잠재적 보상으로 제시되었던 스톡옵션과 보너스들도 함께 사라져버렸습니다. 긍정적이고 자신만만하던 그 나날들의 유산으로 남은 것은 주 60시간 근무 강요뿐입니다. 그리고 시간제 근로자를 제외한 근로자들이 그들의 인생을 바치며 학대당하는 대가로 받는 것은 오직 짤리지 않는다는 것뿐입니다.


되돌릴 수 있을까요?

주 40시간 근로를 다시 정착시키는 것은 고용주와 노동자 양측 모두의 사고방식의 큰 변화를 필요로 합니다.

근로자들은 주 40시간 이상의 근무를 요구하는 경영자들은 그들로부터 소중하고 필수적인 무언가를 도둑질하고 있다는 근본적인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근로자는 삶의 중요한 영역들에서, 모든 추가 근무시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빼앗긴 시간을 무엇으로 메꿔야 할까요? 저녁을 포기하고 패스트푸드를 먹을까요? 운동을 건너뛸까요? 아이들의 주말 행사 참석을 포기할까요? 덜 잘까요? (섹스? 그게 뭐죠?) 당신이 치명적이나 영구적으로 쇠약해져서 더 이상 불가능할 때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희생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당신의 예상보다 짧을 것입니다.) 이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선 1시간의 초과근무가 실제로는 당신의 장기적인 건강을 매우 구체적으로 깎아먹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월급쟁이들은 이에 대해 충분히 보상받지도 못 합니다.

이제 의료계에는 순전히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만 다루는 거대한 산업군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요점은 먹고, 자고, 조금 놀고, 운동하고, 인간관계를 유지할 충분한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별 도움이 필요 없다는 사실입니다. 최초의 근로 시간 단축 운동을 벌였던 19세기 영국의 노동자들의 슬로건은 "8시간 노동하고, 8시간 잠자고, 8시간은 우리가 쓰도록 해달라."였습니다. 이 공식은 지금도 똑같이 통용됩니다.


고용주들이 변하는 건 훨씬 어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기업 문화가 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몇몇 가정들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2세대에 걸쳐 관리자들은 "우수한 관리자"란 근로자들의 엉덩이를 의자에 최대한 오랫동안 붙여놓는 능력이라고 믿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오늘날 직장에서의 "생산성"과 "동기 유발"이란 단어에는 이러한 가정이 내포되어있습니다. 더 적은 근로시간에서 더 많은 산출물을 내는 관리자는 부하직원 능력의 최대치를 이끌어내는 기술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만약 그 관리자가 부하직원들을 더 오래 일시켰다면 분명 더 많이 생산했을 것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만약 직원들이 주당 40시간 일한다면, 관리자는 이를 50시간으로 늘리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이미 50시간이라면 경영진들은 직원들을 야간과 주말에도 붙잡아두고 60시간으로 늘리길 원합니다. 만약 관리자가 거부한다면 --지시대로 따르면 생산성이 오히려 감소할 것이란 사실을 알고-- 그 관리자는 승진에서 탈락합니다.

물론 사람을 더 고용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 50% 일을 더 시키면 50% 추가적인 산출물을 얻는다는 망상에 취한 경영자들은 임금 근로자들에게 더 오랫동안 일 시키면 한 푼도 안 들이고 공짜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믿음을 가진 경영자들은 한 명을 해고하고 그 사람의 일을 다른 두 명에서 나눠주어서 20시간 더 일시키면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이렇게 해도 기업에는 불리한 면이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이는 틀린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는 조국에도 치명적인 피해를 끼칩니다. 주당 50시간 일하는 미국인 4명당 정규직이 될 수 있었던 미국인 1명이 매주 실업자 신세가 됩니다. 걷잡을 수 없는 현재의 청년실업은 기업들이 법정 근로시간을 준수하기 만하면 하룻밤 사이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19세기의 우리 조상들이 했던 것처럼 하지 않는다면 현 상황을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상사와 직면하고, 데이터를 제시하여 그들이 하는 행위가 근로자들에 대한 학대 행위라는 것을 깨닫게 하세요 ─ 그리고 잘못된 믿음으로 수행하는 학대 행위가 잠재적인 이윤을 깎아먹는 행위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쩌면 주주에게도 호소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근로자들이 오래 일하면 그들의 투자금이 심각한 위험에 처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세요. (이미 어느 주주는 수년에 걸쳐 근로자들을 주당 80시간씩 일시키기로 악명이 높던 게임회사를 고소했고, 이 고소는 고소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합의됐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처음 일자리를 구할 때부터 근로 시간을 서면으로 작성하여 상사와 협상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 그리고 계약서에 기술된 내용을 틀림없이 지킬 것을 요구 해야 합니다. 또한 국회의원들의 힘을 빌려서 기업들이 노동법을 준수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요점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신체와 가족, 공동체 그리고 미국 기업들의 이윤과 국가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는 이 미친 짓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야근과 주말 근무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 멍청하고 쓸데없는 낭비라는 사실은 연구를 통해 이견의 여지없이 증명되어있습니다. 직장 상사들은 국가의 인적 자원을 채워 넣지는 않으면서 소모만 시키고 있습니다. 그들이 갈취하는 시간과 자원, 에너지는 근로자의 소유일 뿐만 아니라 우리 조국의 소중한 국부입니다.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근로자들이 금방 번아웃해서 이른 중년에 파멸해 버리지 않고 그들이 균형 잡힌 직장과 가정생활로, 적은 스트레스를 유지하며 명석한 정신을 가진 강하고 든든한 국민 경제의 구성원으로 40~50년간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완전하고 생산적인 40년의 직장생활은 완전하고 생산적인 주당 40시간의 근무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우리에게서 주당 40시간을 빼앗아가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월급 통투를 들고 흔든다 해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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