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9일 월요일

겉보기보다 복잡한 슬롯 게임

원문: The Hidden Complexity of Video Slot Games

소개

비디오 슬롯 게임 회사에 입사했을 때, 전 슬롯 게임이 제가 만들어본 다른 장르의 게임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슬롯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스핀 버튼을 누르고, 이겼는지 확인만 하기 때문에, 상호작용이 없어서 만들기도 매우 간단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라프 코스터는 재미 이론에서 슬롯 게임은 근본적으로 망가진 게임이라 이야기했는데, 슬롯 게임을 만들어 본 적이 없던 우리는 둘 다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슬롯 플레이어는 바보가 아닙니다.

슬롯 플레이어는 도박사들입니다. 스핀 버튼을 누르는 컨트롤 자체는 단순하지만, 이 과정에서 플레이어와 슬롯 간의 정신적 상호작용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도박사들은 경험으로 파악한 게임의 수학 모델의 잠재성을 -게임 요소가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돈을 따거나 돈을 딸 것처럼 보이는 지- 를 기준으로 판단을 내립니다. 카지노의 모든 게임은 판돈에 비례한 환급률(Return To Player percentage)은 비슷한 값을 가지고 있는데, 따라서 환급률이 아니라 얼마나 자주 돈을 따는지, 그리고 돈을 딸 때 어떻게 따는지가 각 게임의 차별화 요인이 됩니다. 이런 차이로 인하여 슬롯 게임들의 인기는 똑같지 않습니다. 여기서 설명한 개념은 슬롯의 수학에서는 보상 변동성(VOLATILITY)보상 분포(PAY DISTRIBUTION)라는 수치로 환산됩니다.

슬롯은 예술과 수학의 결합입니다.

슬롯 게임 개발자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그래픽이 플레이어를 끌어들이고, 수학이 그들을 잡아 놓는다." 제가 슬롯 게임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첫날 친구가 제게 해준 이야기입니다. 그 이후로 모든 신규 입사자들에게 꼭 이 말을 해줍니다.

못난 간판이 달린 상점이나, 책 표지와 같이 아무리 좋은 수학 모델을 만들어도 그래픽이 나쁘면 신규 소비자를 끌어들이기 어렵습니다. 또한 각각의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그래픽 테마는 전혀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그래픽은 예쁜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더 폭넓은 소비자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성도 있어야 합니다. 똑같은 수학 모델에 그래픽만 바꾸는걸 스킨(SKIN)이라 부릅니다. 신규 수학 모델이 개발되면, 동시에 여러 스킨을 입혀 출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슬롯 게임 업계로 뛰어들었을 때, 저는 개발 중이던 그래픽 테마가 취소되면, 당연히 수학 만 떼어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훌륭한 수학이 그래픽에 대한 부정적 반응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론 게임의 수학이 별로라고 판단되면, 개발 중이던 스킨만 분리해서 다른 수학에 적용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생기면 개발 일정에는 차질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던 중 한 번은 잘 만들어진 중국 테마 게임의 성적이 너무 나빠 출시 한 달도 안 되어 폐기한 일이 있었습니다. 같은 수학 모델을 사용한 게임의 3D 스킨을 별도의 팀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고, 새로운 스킨은 독창적인 3D 그래픽 스타일로 이미 완성단계에 이르러 있었습니다. 그 게임의 수학 모델은 이미 심사 기관인 GLI의 승인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수정하기 어려웠고, 마케팅과 사업 부서는 꼭 게임을 출시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실패한 게임을 스킨만 바꿔 재 출시했고, 놀랍게도 이번에는 크게 성공했습니다. 똑같은 수학 모델과, 똑같은 피쳐들로 만든 게임이 그저 스킨만 바꿨는데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그 게임은 성공적으로 다른 슬롯 게임 시리즈에도 투입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수학이 플레이어를 잡아 놓습니다."라고 말했지만, 결국 플레이어는 그 수학에도 질리게 됩니다. 그래픽은 떠나는 플레이어를 잡을 수 없고, 새로운 소비자를 유입시키는 역할만 할 수 있습니다. 성공한 수학모델에 새로운 스킨을 입혀 재 출시 해보았지만, 첫 성공만큼의 성과는 결코 거두지 못 했습니다. 여기서 교훈은 하나의 그래픽 테마만으로 수학 모델의 가능성을 판단해서는 안 되고, 성공작을 만드는데 필요한 그래픽의 중요성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왜 좋은 수학 모델의 스킨만 계속 바꾸는 게 먹히지 않을까요? 어떤 슬롯 게임은 똑같은 수학 모델에 엄청나게 많은 스킨을 입혀 출시하지만, 그렇게 하면 결국 맛집골목에 똑같은 음식을 파는 식당만 즐비한 꼴이 됩니다. 혹은 책장 가득 똑같은 스토리의 소설만 팔고 있는 서점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소비자들은 각기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좋아하던 맛이라도 반복해서 먹으면 결국 질리게 되어 있습니다.

게임 피쳐

슬롯 게임 플레이어는 우선 그래픽을 보고, 어떤 피쳐가 있는지 살펴봅니다. 실제 카지노에서는 게임 화면 상단이나 유리에 부착된 광고문에, 온라인이라면 팝업 윈도를 통해 그 게임의 피쳐들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이런 피쳐들이 게임의 수학을 다르게 만들고, 이 피쳐들은 특허로도 등록됩니다. 거기다 피쳐에게는 독자적인 상표와 브랜드도 부여됩니다. 이러한 피쳐들이 바로 게임의 보상 변동성과, 보상 분포도를 다르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특정 게임 피쳐가 성공하면, 성공한 피쳐는 다른 피쳐들과 함께 묶여 새로운 슬롯으로 개발되거나, 혹은 슬롯 게임 릴의 개수를 조금 바꿔서 재사용 됩니다.

대부분의 피쳐는 기본 슬롯 규칙을 조금씩 꼬아놓은 것입니다. 이를 본 플레이어는 마치 게임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느낌을 받는데 (물론 실제로는 속임수입니다.) 슬롯의 기호가 와일드(모든 기호로 대응되는 기호)로 변하거나, 슬롯이 조금 더 움직이거나 다시 돌리고, 추가 보너스를 지급하거나 무료 찬스를 더 많이주는등의 방법이 사용됩니다. 하지만 어떻게 되던간에, 환급률(Return To Player)은 바뀌지 않습니다. 단지 더 잘 벌게 된다는 느낌만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박사와 게임 피쳐간의 상호작용 때문에 슬롯 게임은 버튼을 누르기만 하는 단순무식한 게임이 아니게 됩니다.

처음 보는 피쳐가 있는 게임을 발견한 플레이어는, 시험 삼아 그 게임을 해볼 것입니다. 새로운 피쳐는 다른 피쳐들과 어떻게 조합되었는가, 혹은 슬롯의 릴이 어떤 형태로 구성되었는지에 따라서 플레이어에게 다른 인상을 심어주게 됩니다. 만약 플레이어가 똑같은 게임에 스킨만 바뀌었다고 느낀다면 새 게임을 계속하지 않을 것이고, 이후에 또 신작이 등장하더라도 더 이상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번쩍이는 새 게임기에 흥미를 가지는 플레이어는 새로운 경험을 원하는 소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 게임의 개발팀은 스킨만 바꾸는 게 아니라, 이미 성공한 수학 모델에도 점진적으로 바꾸어 나갑니다. 스킨을 만드 는건 카지노 한켠을 입증된 수학 모델의 게임들도 채우는 데에는 괜찮지만, 대박을 기대할 순 없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게임(수학 모델), 혹은 인기 좋은 피쳐를 바꾸는 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슬롯 게임 개발사들은 오래되었건 새롭던 모든 수학 모델이 좋은 수익을 창출하기를 바라지만, 당연히 그렇지 못합니다. 소비자의 기호가 다양하기도 하고, 같은 게임을 반복하면 질리기 때문입니다. 잘 만든 게임은 일정 기간 수익을 낼 수 있지만, 결국에는 매출이 감소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혁신적인 피쳐의 게임, 기존의 수학 모델에서 파생된 게임 혹은 과거에 성공했던 수학 모델을 살짝 바꿔 새 스킨을 입히는 방식으로 산탄총 전략을 사용합니다. 슬롯 게임사간 치열한 경쟁에서 매출 동향을 살피며 성공적인 추세를 쫓고, 새로운 특허 아이디어 구상하며, 경쟁사 수학 모델을 역공학 분석으로 파헤치거나 훔쳐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저희는 그런 적 없습니다!😉

따라서 슬롯 개발사에게 중요한 성과 지표는 새로운 수학 모델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내냐 하는 것입니다. 빅보이 슬롯 게임사는 50~100종의 슬롯 게임을 출시하는 걸 목표로 하고, 출시하는 게임 중 1/3에서 절반 정도는 스킨이 아니라 새로운 수학이나, 성공한 수학의 변형 모델로 개발됩니다.

군비 경쟁

이렇게 매일 기존의 피쳐를 독창적으로 조합하거나, 혁신적인 피쳐들이 개발되며 슬롯 게임의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아이디어들이 등장한... 다면 좋겠지만 많은 아이디어는 특허로 이미 보호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허들을 기업 간의 치열한 소송전으로 철두철미하게 보호됩니다. IGT가 개발한 Vegas strip은 "행운의 돌림판"으로 대박을 냈는데, Bally에서 돌림판 보너스 특허를 사들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패소함) 이로 인해 돌림판 보너스 특허가 무효가 되자, 모든 슬롯 개발사가 돌림판 보너스를 만들었습니다.  Aristocrat가 "릴 파워" 피쳐로 큰 재미를 보자, 모든 경쟁사에서 이를 베낀 게임을 출시했고, 이에 Aristocrat는 소송으로 응대했습니다.(또 패소) 왜냐하면 법원은 "릴 파워"가 널리 사용되던 scatter pay-위치에 상관없이 기호 개수만으로 당첨-의 변형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Cadillac Jack (현재 AGS)이 "연쇄 스택"을 선보이자 특허권을 가진 Konami와의 법정 공방 끝에 결국 합의하였고, 이후 Cadillac Jack은 특허 등록에 더 열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IGT(과거 GTech)와 WMS(이제 SciGames)는 일년내내 맞고소하며, 종종 합의를 통해 특허 사용권을 교환합니다. 이처럼 슬롯 게임사들은 소송전을 펼칠 지적 재산권들을 보유하고 있고, 하드웨어 특허를 통해서도 스스로를 보호합니다.

저는 슬롯 개발사들이 게임 기획을 특허권으로 보호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만약 Westwood가 건물 건설하고, 유닛을 생산하는 전략시뮬레이션을 특허 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랬다면 Westwood(현재 EA)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를 개발한 Microsoft를 비롯하여 모든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개발사를 고소할 수 있었을 겁니다. 만약 ID가 FPS게임의 특허를 가지고, Epic, Value, Activision, Ubisoft 그리고 EA가 FPS를 개발 못 하게 막았다면 어떨까요? Orgin이 MMORPG의 특허를 가졌다면? 에버 퀘스트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개발하지도 못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슬롯 게임 개발사들은 특허권으로 이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겪은 슬롯 게임 업계는 험악한 특허권 소송이 오가는 동시에 특허를 회피할 방법을 고안하느라 분주하였습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운신의 폭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6년 중 상당한 시간을 아이디어들을 특허 출원하는 데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슬롯 게임의 페이스 조절하기

가마수트라는 페이싱에 대한 훌륭한 글로 가득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페이싱의 본질은 플레이어가 일정 시간 동안 편안한 상태에서 조금씩 긴장감을 높여가다가, 폭발적으로 강렬한 경험을 주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플레이어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됩니다. 페이싱이 잘 못된 FPS의 예를 들면, 쉴 틈 없이 적들이 등장한다면 어렵지만 똑같은 긴장도에 노출된 플레이어는 지루함을 느끼게 됩니다.

잘 만든 게임의 페이싱은 보통 게임과 마찬가지로 수학 모델의 보상 변동성에 따라 타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라 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많이 잃을수록 칩을 땄을 때의 쾌감은 더욱 커집니다. 또한 보상 변동성이 큰 게임일수록 한번 이겼을 때 따는 돈이 큰 경향이 있습니다.

조금씩 자주 돈을 딴다면, 크게 땄을 때 경험도 그만큼 시시해집니다. 이러한 게임을 찔찔이라고 부르는데, 찔찔이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카지노 입장에서는 찔찔이 게임은 게임 플레이 시간이 긴 반면, 시간당 수익률이 나쁘기 때문에 선호하지 않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찔찔이 게임을 하면, 영화 한편 볼 정도의 돈이면 저녁 내내 즐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찔찔이는 동네 술집이나 소규모 카지노에서 인기가 좋습니다.

도박사들은 보상 변동성이 큰 게임을 선호합니다. 변동성이 크면 오랫동안 잃기만 하거나, 극히 소액만 따다가 갑자기 큰돈을 따고, 초대박 모드가 발동되어 그동안 잃은 돈을 단 번에 회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게임은 시작할 타이밍을 잘 맞추면 대박을 내서 큰돈을 벌고 카지노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게이머는 과거 수백 번 카지노에 놀러 가서 날렸던 돈은 기억 하지 못 하고, 대박으로 딴돈도 결국은 슬롯머신에 다시 부어 넣습니다.  그래서 카지노가 수익을 내고, 저 또한 안정적인 직장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대박 포장하기

초보 개발자가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작은 보상을 너무 화려하게 포장하는 것입니다. 패이싱과 마찬가지로 기호들이 날뛰며 동전이 쏟아지고, 종소리와 환호성을 반복해서 듣게 되면 플레이어는 금세 질리게 됩니다. 심하면 대박이 터져도 눈치채지도 못한 채 지나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새 추세는 베팅액의 2배 이하로 땄을 때는 기호 애니메이션도 하지 않고, 20배 이상만 대박으로 간주하여 황금과 동전이 분수처럼 쏟아지는 불꽃놀이를 보여줍니다.

플레이어들은 참을성 있게 보너스 모드를 기다리는데, 수학 모델의 설계상 보너스 모드에서 크게 따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보너스 모드는 발동부터 다양한 효과로 플레이어를 흥분시킵니다. 예를 들어 3개의 기호를 맞추면 보너스 모드가 발동된다면, 슬롯이 돌아가는 동안 보너스 표식 애니메이션이 나타나며 첫 번째 기호가 등장할 때 효과음이 재생됩니다, 두 번째 기호가 등장하면 더 큰 효과음이 나오고, 마지막 슬롯이 돌아갈 때에는 회전하는 슬롯이 번쩍이는 특수 애니메이션이 나오며 슬롯이 평소보다 더 빠르게 돌다가 천천히 감속하여 기대감을 잔뜩 고조시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기호를 맞춰 보너스가 발동되면 신나는 종소리-대부분의 게임에서 공용으로 사용되는 대박 효과음-가 울려 퍼집니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플레이어들은 이러한 소리와 애니메이션이 나타나면 대박이 왔다는 걸 학습하게 됩니다. 그리고 대박으로 큰돈을 벌었던 그 경험을 다시 느끼기 위해 카지노에 반복해서 찾아옵니다.

주변의 다른 플레이어들도 종소리가 들리면, 주변을 둘러보며 어떤 게임에서 대박이 났는지 직접 보려 합니다. 하던 게임도 멈추고 얼마나 큰 대박이 나타나는지 구경하는데 이러한 대박에 고양될 경우, 하던 게임을 그만두고 다른 사람이 대박 난 것과 같은 게임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이런 방식으로 각 게임들은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팽팽하게 경쟁합니다. 돈을 딸 때 딴 돈의 크기에 비례해 어떻게 보여주느냐 하는 것이 게임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플레이어의 인구통계학적 특징

다른 장르의 게임 개발자들도 겪는 일이겠지만, 슬롯 게임의 소비자는 게임 개발자들과 인구통계학적 특성이 크게 다릅니다. 잡화점용 슬롯 게임의 경우 나이 든 여성(50세 이상), 중간값은 53세 여성이 주 고객입니다. 따라서 최신 콘솔 그래픽이나 CG등 개발자들이 만들고 싶어 하는 테마나 기술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동료 아티스트나 애니메이터는 모두 Pixar를 꿈꾸거나 콘솔용 FPS게임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평균 연령(20대 중반)은 슬롯 플레이어의 평균 연령과는 크게 달랐습니다. 만화풍이나 스팀펑크 테마의 슬롯 게임이 호응을 얻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 또한 3D 게임을 개발했었기 때문에, 3D게임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50대 할머니에게는, 3D 게임에 특별히 관심을 기울일 요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개발한 3D 게임은 중 일부는 성공을 거두었지만("Goddess of the Woods")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2D에 비해 3D 게임을 만드는 데에는 대략 3배의 비용과 2배의 시간이 소요됐는데, 손익 관점에서 3D 게임을 만들자고 경영진을 설득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1개의 3D게임을 만드느니, 각기 다른 테마의 2D게임을 2~3개 만드는 게 성공 확률이 더 높았습니다. 3D게임은 가끔 비싼 인기 IP의 게임을 만들 때에만 시도했습니다.

그 와중에 제 개발팀이 포토샵과 애프터 이펙트로 뚝딱 만들어 개발부터 테스트까지 한 달도 안 걸린 2D게임("Gold Dragon Red Dragon")이 오랜 기간 개발했던 3D게임과 비교할 수 없는 큰 매상을 올리면서 경영진의 방침은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물론 이러한 성공은 드래곤에 인기에 기댄면이 있습니다. 드래곤은 판타지의 상징일 뿐 아니라 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드래곤의 보물 동굴) Gold Dragon Red Dragon의 성공 이후로 저희는 더 많은 드래곤 테마 게임을 출시했습니다.

또 한편으로 IP게임이 있습니다. IGT, Aristocrat, WMS와 같은 개발사는 영화나 텔레비전, 혹은 인기 연예인 IP의 게임을 쏟아냅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들인 IP라도 "Wheel of Fortune", "Sex in the City", "Monopoly"등의 슬롯 게임 플레이어에게 매력이 없다면 성과를 보지 못 합니다. 저는  80년대 오락실 인기 IP "Dragon's Lair"의 IP를 우수한 수학 모델의 스킨으로 출시해보고, 이 후 저희가 만든 것 중 가장 성공적이었던 게임의 수학 모델의 스킨으로도 재출시 해보았지만 "Dragon's Lair"의 성과는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습니다. 슬롯 소비자인 50세 이상 여성층에게 80년대 오락실 게임IP는 매력적인 소재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소비자들의 취향은 변화무쌍합니다. 잘 만든 수학 모델이 그래픽 테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도 있습니다. 아시아 테마의 게임은 과거 인기를 끌었다가 사그라들고, 또다시 인기를 끌어 신작이 잔뜩 쏟아지다가, 너무 많아지자 소비자들이 질려서 다시금 인기를 잃었습니다. IGT와 High 5 Games는 리터칭 한 실사풍 캐릭터에, 연애 소설 느낌이 나는 테마의 게임을 수도 없이 쏟아냈습니다. 출판 시장에서의 연애 소설의 인기를 생각해 볼때, 이런 테마의 슬롯 게임이 50세 이상 여성을 주류로 하는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게 놀랄 일일까요? 다른 슬롯 게임회사들도 연애 소설 테마의 슬롯 게임을 쏟아내기 시작하자, 넘쳐나는 연애 소설 테마 게임의 틈바귀에서 다시 옛 유행이었던 고전 만화나 공상 과학 테마의 게임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과거의 테마와 유행이 반복되기도 하지만, 시시때때로 사회의 트렌드가 반영된 새로운 유행이 등장합니다.

연구와 느낌의 중요성

게임 기획자라면 경쟁사의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게임을 베낀다는 의구심이 들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기획자는 플레이어가 되어 보아야 합니다.  고도의 수학적 사고로 무장하고 있더라도, 슬롯 게임 기획자도 콘솔 게임 기획자들과 마찬가지로 플레이어가 무엇을 원하고 생각하는지 감지해야 합니다. 단순한 수학자라면 회사에서 필요한 게임의 환급률은 맞출 수 있지만, 훌륭한 게임 기획자는 플레이어가 미묘하게 딸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돈을 따는 것과 잃는 경험의 균형을 맞추고 피쳐와 보너스 게임의 발생 빈도를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느낌은 상당 부분 도박사의 기대감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가 조금만 더 있으면 대박이 날 것이라는 느낌을 받고, 그러한 감이 실제 대박으로 연결된다면, 그러한 느낌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다시 반복해서 게임을 하러 찾아 올 것입니다.

수학 모델이 얼마나 가혹하게 느껴지는지는 보상 변동성으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는 게임이 돈을 빨아가는 걸 느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적절한 5배나 10배짜리 게임을 몇 판 하고, 대박 피쳐나 보너스를 맞출 것 같은 게임판을 몇 번 보게 되면 조금만 더 하면 우주가 응답하여 대박이 터지지 않을까, 그래서 차량 할부금과 월세를 낼 돈을 따지 않을까 하고 꿈꾸게 됩니다. 하지만 보상 변동성이 너무 가혹해서 겨우 5명 중 1명 정도만 돈을 따는 경험을 하는 수준이거나, 대박 근처에도 못 가는 가혹한 게임이라면, 체류 시간(TIME ON DEVICE)은 매우 짧습니다.

카지노는 더 빠르게 수익을 창출하는 체류시간이 짧은 게임을 선호하지만, 대신 이와 같은 게임은 재방문율이 낮습니다. 가혹한 게임은 라스베이거스나 애틀랜틱시티처럼 일 년에 한두번 방문하는 관광지에는 적합하지만, 동네 주점이나 카지노처럼 매주 사람들이 반복해서 찾아오는 장소에는 훨씬 덜 가혹한-보상 변동성이 작은- 게임이 적합합니다. 그래서 기기 제조사는 같은 게임도 업소별 특색에 맞게 보상 변동성과 환급률을 다르게 조정하여 제공합니다. 슬롯 게임 기획자라면, 당신의 게임을 판매할 카지노에 찾아가 직접 게임을 해보면서, 그곳의 플레이어들이 어떤 경험을 선호하는지 배워야 합니다.

소셜 카지노, 그리고 결론

저는 잡화점용 게임 개발로 시작해 온라인 현금 카지노도 만들어 보았었고, 이들을 만들며 배운 교훈들을 페이스북과 모바일용 소셜 카지노 게임에 적용해 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슬롯 게임임에도, 소셜 슬롯 게임은 기존의 슬롯 게임과는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모바일 사용자는 인구 특성 자체가 다릅니다. 더 젋은 남자인 경향이 있으며 게임을 하는 빈도는 더 잦지만, 한 번에 게임하는 시간은 짧습니다. 이들은 저녁 먹고 TV를 보면서 게임하거나 업무 중 휴식시간이나 화장실에서 플레이합니다.

또한 소셜 카지노 플레이어들이 진짜 돈으로 가짜 칩을 사들여 도박을 한다는 사실이 저는 아직도 놀랍습니다.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PU중에서도 1-2%에 불과한 고래 소비자에 의존하는 Freemium/부분 유료화 수익모델이 소셜 카지노 게임과 궁합이 잘 맞습니다. 현실의 카지노를 부자로 만든 수학 모델이, 소셜 카지노에서도 플레이어들이 공짜칩을 다 잃고 현금을 써가며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플레이어들은 진짜 돈이 아니라도 돈을 따는 걸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라프 코스터가 책에서 말한 것과 달리 슬롯 게임은 망가져있지 않습니다. 설령 게임 플레이는 스핀 버튼을 누르는 행위 밖에 없다 하더라도 플레이어들은 이긴다는 경험만으로 분명히 무언가를 얻고 있습니다.

댓글 3개:

  1. 덕분에 많은 배움 얻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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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너무 좋은글 잘봤습니다 내공이 많이 느껴지는 글이였습니다! 여쭤보고싶은게 있어서 그러는데 혹시 괜찮으시면 miracle2710@naver.com로 이메일 한번 보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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